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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고, 몰락한 왕

Viego, the Ruined King

 

비에고는 근접 암살자형 챔피언으로 돌진과 CC를 지원할 수 있으며, 처치된 적을 지배해 다양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단,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Viego

"치르지 못할 대가는 없다. 저지르지 못할 악행도 없다. 이졸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리라."
~ 비에고

 


배경 이야기

 

바다 건너 동쪽 먼 곳의 왕국, 해안을 따라 점점이 남은 폐허들에서나 간간이 들리는 이름을 아는 이는 적다. 그 왕국의 젊고 어리석은 군주, 사랑에 빠져 왕국을 파멸시킬 운명을 타고난 왕자를 아는 이는 더더욱 적다.

그 이름은 비에고, 세상 모두에게 중대한 위협이 된 남자다.

선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비에고는 왕좌를 물려받을 후계자가 아니었다. 그 대신 안락한 삶을 영위하며 자만심과 이기심만 키웠으나,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는 왕국을 다스릴 적성도, 바람도 없이 얼떨결에 왕관을 쓰게 되었다.

가난한 재봉사 이졸데를 만나기 전까지, 비에고는 왕좌에 관심이 없었다. 이졸데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젊은 왕 비에고는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렇게 세계에서 손꼽히는 권력을 가진 왕이 시골 소녀와 맺어졌다.

두 사람의 연애는 매혹적이었다. 타인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던 비에고는 자신의 삶을 이졸데에게 바쳤다.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비에고는 이졸데를 두고 나다니는 일이 드물었고, 자신의 왕비에게 선물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졸데가 곁에 있을 때는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았다.

비에고의 신하들은 성이 났다. 어떻게 해도 비에고가 정사를 돌보지 않고, 미심쩍은 통치 아래 왕국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몇몇이 은밀히 모여 나랏일에 관심이 없는 새 왕을 끌어내리고자 모의했다. 한편, 왕국의 적들은 이를 공격의 기회로 보았다. 독사들이 꽈리를 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독 묻은 단검을 지닌 자객이 비에고를 찾아왔다. 하지만 왕을 둘러싼 삼엄한 경비 탓에 단검은 표적을 찌르지 못하고 이졸데를 스쳤다.

독이 빠르게 퍼져서 이졸데는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비에고는 아내의 상태가 점점 위중해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분노와 절망에 압도당한 비에고는 아내를 구하고자 나라의 모든 재물을 탕진했다.

하지만 모두 헛된 일이었다. 이졸데는 침대에서 죽어갔고, 광기가 비에고를 집어삼켰다.

비에고는 더 맹렬하고 필사적으로 해독제를 찾았다.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비에고는 그녀를 되찾고자 국고를 모조리 털어 동전 하나 남기지 않았다. 이내 왕국이 혼란에 빠지자, 증오와 분노로 가득한 비에고는 죽은 이졸데와 칩거에 들어갔다.

어느 날 비에고는 축복의 빛 군도에 어떤 병이든 치유하는 물이 있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강력한 군세를 이끌고 평화로운 군도에 쳐들어가, 길을 가로막는 이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심부의 성소에 도달해 아내의 몸을 축복받은 물속에 담갔다. 이졸데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가 불러온 파멸 따윈 상관없었다. 치르지 못할 대가는 없었다.

잠시나마, 이졸데가 정말로 돌아왔다.

이졸데는 그림자와 격노의 끔찍한 망령으로 되살아났다. 그녀는 죽음의 품에서 강제로 떨어진 충격, 분노, 고통에 비에고의 마법 검을 들어 그를 찔렀다. 축복받은 물에 담긴 마법과 고대의 검이 격돌하자, 방의 기운이 폭발하며 군도 전역을 찢어놓고 그에 닿은 이들 모두를 의식을 유지한 채 고통받는 언데드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비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나라가 무너져 폐허가 되었고, 위대한 국가들이 세워지고 멸망했으며, 그의 이름마저 잊혔으나... 죽음 이후 천년이 지난 지금, 비에고가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라.

생에서 품었던 것과 같은 위험한 집착이 비에고의 정신을 일그러트린다. 괴기하며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그의 모든 행동과 소망과 잔악함을 부추긴다. 상처받은 심장에서 치명적인 검은 안개가 쏟아져 지나는 곳마다 생명을 앗아간다. 검은 안개로 세상을 뒤져 이졸데를 되찾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비에고 앞에 쓰러진 군단들이 그의 종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며, 살아있는 어둠이 대륙들을 집어삼키리라. 세상은 사랑의 열병을 앓던 고대 군주의 행복을 앗아간 대가를 남김없이 치를 것이다. 이졸데의 얼굴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는 어떤 파괴를 불러오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비에고의 통치는 공포다.

비에고의 사랑은 영원하다.

이졸데를 되찾을 때까지, 누구도 몰락한 왕의 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단편 소설

 

그녀

제러드 로슨

비에고가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조금씩 달라 보였다.

두 눈이 너무 멀찍이 떨어져 있기도, 너무 가까이 붙어 있기도 했다. 아니면 뺨이 조금 여위었거나 크기도 했다. 재봉사라면 으레 생기는 굳은살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가위와 바늘을 써 뼈마디 굵은 손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녀는 가운을 입거나, 간소한 작업복을 입거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항상 달랐지만 같았으며 늘 실체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더는 비에고가 갖지 못한 허깨비 같은 심장이 찢겨 나간 것은...

비에고는 세계의 밑바닥에서 검게 변한 채 산산조각이 난 왕좌에서 왕의 검을 밑에 있는 바위에 깊이 내리꽂았다. 흑요석이 갈라지며 그림자 군도 전체가 무시무시하게 떨렸다.

왼쪽에는 비에고가 도저히 쳐다볼 수 없는 그림이 놓여 있었다. 아름다운 이졸데의 얼굴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사랑스러워 비에고에게 평화나 휴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비에고는 그녀의 모습을 찢었다. 남은 것은 수 세기 전 어리석게도 세상이 좋은 곳이라 믿었지만 지금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젊은 왕의 모습뿐이었다.

살아 있다고 해도 이전과는 달랐다.

비에고는 그림자나 고통에 뒤틀리지 않았던 과거의 국가가 어땠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 속에서 사암 거리로 나간 비에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이졸데뿐이었다. 모든 벽을 채운 벽화에 그녀가 있었다. 그곳은 비에고만이 보고 만질 수 있는 그림 세계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가면 환상이 깨져 다시 이곳, 그녀를 빼앗아 간 더러운 물에 둘러싸인 곳으로 돌아왔다.

땅에 꽂힌 검을 뽑으며 일어선 비에고는 울부짖으며 육중한 검을 휘둘러 바닥과 벽을 박살 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옛 왕국의 오래된 그림을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둠이 군도를 삼키기 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에고. 정말 잘생겼구나. 정말 젊어. 어쩌다 이렇게 됐지? 넌 어디로 사라진 거야?" 비에고는 그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액자에 꼴사나운 금이 가며 아래에 있는 캔버스가 구겨졌다.

"어디 있어, 이졸데? 왜 내게 돌아오지 않지?"

그러나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존재에게 검은 안개는 재앙이었다. 생명을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망령들이 태양이 죽고 세계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산 자를 공격하며 빼앗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매개체였다.

비에고에게 검은 안개는 상심으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크나큰 슬픔이었다. 오래전 사라진 행복한 나날 비에고가 사랑했던 증거이자 머나먼 옛날 그가 무엇을 빼앗겼는지 떠올리게 하는 잔혹한 것이었다.

땅을 샅샅이 뒤지며 무서운 힘으로 마수를 뻗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이 안개는 닿는 것의 생명을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결국 괴사한 생명체에게는 대몰락의 은은한 초록빛만이 남곤 했다. 그러나 이 안개에도 목적은 있었다. 안개는 비에고의 슬픔이 크거나 작아지는 것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며 익숙하고 안전한 예전의 뭔가에 이끌리듯 이곳저곳을 뒤졌다. 그 안에서 함께 이동하며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망령이나 영혼과 달리 안개 그 자체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매달릴 뿐이었다.

비에고가 하는 모든 일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안개가 뭔가를 찾았다. 빌지워터의 부두와 아이오니아 연안 너머, 군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본토 강기슭에 있는 작은 도시에 뭔가가 숨겨져 있었다. 그 물체는 비에고를 부르며 소리쳤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봐 달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집과 들판에 부드럽게 깔리는 죽음의 이불을 피해 도망치는 와중에도, 망령이 비명을 지르며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와중에도, 비에고에게는 단 하나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비에고." 목소리가 뭐라고 하는지 명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굶주린 그림자처럼 안개에서 튀어나온 몰락한 왕은 검을 높이 들어 처음 눈에 들어온 경비병을 찔렀다. 경비병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졌다. 서서히 몸이 사라진 경비병의 영혼이 안개에 흡수됐다. 하지만 비에고는 무심하게 다음 경비병을 내려칠 뿐이었다. 사방에서 악귀가 산 자를 먹어 치우자 영혼들이 끌려 나와 왕의 군단에 합류했다.

타오르는 육체가 날아다니고, 화살이 떨어지고, 검이 맞부딪히며 전사들이 쓰러졌다.

비에고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도시의 거대한 벽 앞에서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안개가 앞으로 돌진했다. 이내 벽이 부패하기 시작하며 돌이 떨어져 나갔다. 문턱을 넘은 비에고는 어느새 벽을 통과해 있었다.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조용히 움직이며 두 사람을 더 쓰러뜨린 비에고는 곧이어 또 다른 자를 쓰러뜨렸다. 아무 의미도 없는 자들이었다. 그 어떤 가치도 없으며 전부 하찮기 그지없었다. 뒤에서 죽은 자의 영혼이 비에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일어났다.

비에고의 앞에는 이 도시의 통치자가 서 있었다. 어떤 보물을 지키고 있는 오만한 남자였다. 하지만 같은 지도자로서, 실력 있는 전사로서, 굶주린 영혼보다 부하로 부리기는 더 좋을지도 몰랐다.

"멈춰라." 비에고가 다시 한번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몰락한 왕의 지시에 안개, 망령, 공포, 싸움,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네 뒤에 있는 것은 네가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보물이다. 내게 돌려준다면 내 밑에서 따를 수 있게 해 주겠다."

남자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나지 않는 듯 말을 더듬거리는 것 같았다. 비에고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물을 넘기면 이 도시는 무사한 겁니까?"

몰락한 왕은 실망한 듯했다. 남자는 비에고가 대답을 생각할지, 괜히 물었다고 후회할지 알 길이 없었다. 위에서 불쑥 나타난 비에고가 거대한 검으로 이 작고 겁에 질린 전사 왕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검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진 남자의 몸을 타고 검은 어둠이 퍼졌다.

비에고는 남자의 뒤에 있는 문을 뜯어냈다. 안에 보물이 놓여 있었다.

낡고 해진 오르골, 비에고의 결혼식 선물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속삭였다. 오르골은 슬픔에, 한없이 큰 비애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오르골을 눈앞으로 들어 올린 비에고는 다시 만나는 날 이졸데의 얼굴에 떠오를 부드러운 미소를 상상했다.

"내 사랑, 놈들이 대체 무슨 짓을 했지?" 비에고가 달콤히 속삭이는 것과 동시에 쓰러진 남자가 천천히 땅에서 일어났다. 갈라진 피부 틈으로 으스스한 푸른빛이 고동쳤다.

"걱정하지 마." 비에고가 오르골에 대고 말했다. "반드시 당신을 찾겠어. 이건 시간문제일 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비에고는 망령이 집어삼킨 도시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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